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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년 이끈 선비정신의 본향

<기획시리즈> 경북의 정체성, 대한민국의 혼이 되다 Ⅱ-1. 선비정신과 퇴계의 가르침


경북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는 수구꼴통, 배타성, 불통이 진정 경북인의 생각과 행동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북은 그 시대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을 갖춰 경북뿐만 아니라 나라의 갈 길을밝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경북이 지키고 가꾸어 온 정신적 자산은 우리나라의 민족정신으로 승화돼 반만년 역사를 이루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화랑·선비·호국·새마을’ 정신이다. 화랑정신은 호연지기와 심신수양을 통해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됐고, 호국정신은 신라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난을 극복하는 힘이 됐다. 선비정신은 퇴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삶에 바탕을 둔 정신으로 삶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올곧은 현실참여로 나타났다. 새마을정신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자는 공동체 운동이자 상생의 리더십을 가리킨다. 이른바 ‘화랑·선비·호국·새마을’ 정신으로 대표되는 경북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보고 이 정신이 어떻게 한민족의 민족정신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현대사회에서 선비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된 경북 안동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의 선비 수련 모습.

 

◆선비의 핵심가치, 한국 성리학의 출발점 경북 

고대 경북 화랑의 신념과 가치는 서릿발 같은 기개와 절의, 대의를 우선으로 하는 경북의 선비에게 이어졌다. 

고려 무신정권이후 경상도를 기반으로 등장한 신흥 사대부계층은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당시 원나라의 통치이념이었던 신유학인 주자학(성리학)을 들여와 이를 우리 실정에 맞게 재정립해 발전시키고 계승했다. 

이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인물이 경북 영주(순흥) 출신의 회헌 안향이었다. 이후 조선시대에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가장 먼저 성리학을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한 중심축이 바로 경북의 선비다. 

특히 경북의 선비들은 고리타분한 학자가 아니었다. 내적으로는 지식을 쌓으면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몸을 일으켜 세운 ‘시대의 진정한 스승’ 이었다. 

경북의 선비들이 주축이었던 영남사림은 성리학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대의명분을 중요시 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편승해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훈구 세력과 자주 충돌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영남사림은 무오사화를 시작으로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에 이르는 60여 년 간 훈구 세력과의 대결로 피해가 심했지만 성리학적 이념인 대의명분에 따라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절의를 지키며 개혁을 주장했다. 

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격을 닦아 서원, 향약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었으며, 새로운 것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퇴계 이황의 고택



◆동방의 주자, 영원한 스승 퇴계 이황의 고장 

선비를 이야기 하면서 ‘성리학의 대부’인 퇴계 이황을 빼놓을 수 없다. 퇴계 이황이 태어나고 조선 500년의 뿌리인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곳이 경북 안동이다. 

퇴계는 성리학을 조선 사회 실정에 맞게 재창조하고 토착화한 인물이다. 사회주도층으로 성장한 영남사림의 활동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고, 사원보급에 힘쓰며 인재를 양성했다. 

그는 초기 서원이 중시했던 제향 기능을 부수적인 것으로 하고, 사림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자기 수양을 하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이황의 이런 활동을 통해 조선 서원의 전형이 완성됐으며, 이황은 서원을 활용, 국가 경영과 사회 운영을 주도할 사림들을 키우고자 했다. 

아울러 그는 성리학적 사회윤리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예안향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예안향약은 그의 고향인 예안현(지금의 안동)이 피폐해짐을 목격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제시한 자치규약이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덕업상권), 잘못은 서로 바로잡아주며(과실상규), 예속으로 서로 사귀고(예속상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준다(환난상휼)는 중국 북송 시절 향촌의 교화와 선도를 위해 만들었던 여씨향약을 본떠 조선의 실정에 맞게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퇴계의 사상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며 확산됐고 조선사회의 주류인 퇴계학파를 형성했다.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이후 문집이 일본에 유입돼 일본 기몬학파와 구마모투학파 등 일본 내 주자학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그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과 대만, 미국, 중국 등 국경을 초월해 이뤄지고 있다. 

퇴계는 작게는 허물없이 지내는 막역한 사이일수록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황이 손자 안도의 혼례를 맞아 보낸 편지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예의를 잊어버려, 급히 친해지니, 급기야는 거만하고 업신여기게 되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 이는 모두 서로 공경하지 않아 생기는 것이다.’ 

각종 소셜미디어 등의 홍수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퇴색돼가고 있는 요즘 더욱 와 닿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이황을 비롯해 수 백 년 전 경북의 선비가 남긴 여러 가르침은 현시대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도 있다. 

경북이 지금껏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인이되 실천하고,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애썼던 경북의 선비. 그들의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경북의 ‘위대한 유산’이다. 

<참고자료-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




 (출처-경상북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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