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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고마운 풍어 선물하는 감포의 앞바다

[기획-경북人 경북in] 1. 20여년 경북의 바다와 함께한 김만용씨

경상북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유서 깊은 문화, 그리고 첨단산업이 적절히 융화된 고장이다. 이곳에는 경북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경북사람’들이 있다.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들의 사람 냄새나는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지금의 경북을 만들어낸 저력을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중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갈 힘과 지혜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경주 감포항에서 20여 년 째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만용씨. 그는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바다로 나간다.(사진/프라이드i뉴스)

 

경상북도 경주 최대의 어항(漁港)인 감포항. 4.28톤의 작은 어선이 출항을 준비 중이다. 이 배의 선장은 김만용(61)씨. 선장이자 유일한 선원이다. 그는 40여 년을 바다와 함께했다. 

부산에서 어부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그도 어부의 길로 들어섰다. 부산을 떠나 이곳 감포에서 어부 생활을 한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바다로 나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동해 바다 한가운데 있었다. 

“먹고 살라면 별 수 있능교? 나가서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제. 그래도 일단 배타고 나갔다 카믄 바다는 인심 좋게 물고기를 많이 내어주니까 그저 고맙지요.” 

그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3~4시에 바다로 나와 4~5시간 정도 조업한다. 밤낮이 바뀐 일과지만 풍어(豐漁)와 만선(滿船)을 생각하면 피곤함도 잊는다. 

예순을 조금 넘긴 나이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온통 은빛이고, 얼굴의 주름은 깊게 패어있다. 동해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그의 주름을 파고, 머리카락을 더욱 빨리 세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청년에 비할 만큼 강하고, 몸의 움직임도 빠르고 힘 있다. 


그의 하루는 이른 새벽 시작된다. 감포항에서 1시간 정도 더 나아간 곳에서 전날 쳐놓은 자망을 양방기로 끌어올리며 조업을 시작한다.(사진/프라이드i뉴스)

 

감포항에서 그가 조업을 하는 곳까지는 배로 1시간 정도 더 나가야 한다. 작은 어선이 하얀 거품을 내며 바다를 가르고 지나가면 갈매기들이 양 쪽으로 길을 터준다. 

그는 레이더와 좌표를 보면서 배의 키(rudder)를 움직이는 조타기(핸들)를 조정한다. 도중에 간간히 무전기로 육지와 교신을 이어가기도 한다. 

어느새 바다를 둘러싼 어둠이 걷히고 구름 사이로 빨간 해가 빼꼼 드러난다. 저 멀리 모습을 감췄던 육지도 흐릿하게나마 보인다. 

그 시간 즈음이면 그가 전날 던져 놓은 부표를 발견할 수 있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부표가 흔들리며 그를 반긴다. 그는 물고기 떼가 지나다니는 길목에 자망(걸그물)을 쳐놓았다. 

배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그는 선실에서 나와 닻을 내린다. 그가 그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양방기를 작동시키면 서서히 자망이 감겨 올라온다. 

바다는 파도쳐야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생의 절반이상을 바다와 함께해온 그도 바다와 닮았다. 그는 파도처럼 힘차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온몸으로 자망을 걷어 올리고 자망에 걸린 물고기를 떼어내어 ‘휙’ 하고 던져 놓으며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왼쪽으로 양방기에 감겨 올라온 그물이 쌓이면 오른쪽에 있는 배안 수조에도 물고기들이 쌓인다. 잡힌 물고기들은 배가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바닷물이 담긴 수조 안에서 보관한다. 


4~5시간가량 조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사진/프라이드i뉴스)

 

조업 막바지. 깜깜한 바다 안에서 유일하게 배를 밝혀주던 백열전구의 빛도 서서히 약해지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수평선 너머 온전한 모습의 태양이 떠오른다. 햇빛을 받아 그의 은빛 머리칼도 주홍빛으로 물든다. 자망이 양방기 끝까지 올라오면 그는 기계를 멈추고 더러워진 배의 바닥을 물로 청소한 뒤 마지막으로 닻을 걷어 올린다. 

이렇게 하루 바다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보통 10~15㎏ 정도 잡는다. 주로 걸리는 것이 (참)가자미와 물곰(곰치)이다. 그는 “가자미가 자망에 걸려 올라오는 걸 보면 제일 기쁘다”고 말했다. 가자미가 올라오면 그의 표정이 밝지만 다른 것들은 썩 밝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자미는 ㎏당 1만2천원, 물곰은 ㎏당 3천원이다. 그에게 가자미가 더 반가운 이유다. 오징어나 꽃게 같은 소소한 어종들도 더러 잡히지만 반가운 손님은 아니다. 그에게 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가자미지만 그가 반기는 귀한손님도 가자미다. 

“감포 바다에서 잡히는 가자미가 다른 곳에 비해 실합니더. 먹어보면 살도 훨씬 쫄깃하고 맛도 좋다 카고.” 툭하고 던지듯 뱉는 말이지만 감포산 가자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바다에서의 조업을 마치고 오전 9시 30~10시면 다시 항구에 들어온다. 배가 육지에 닿았다고 해서 그의 일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딱 절반 마쳤다고 했다. 그는 쉴 틈 없이 곧바로 가자미를 위주로 잡은 생선의 선별작업에 들어간다. 

항구 앞에 놓여있는 저울에 무게를 달고 무게별, 크기별로 선별을 거쳐 항구 인근 횟집에 바로 팔아넘긴다. 감포항 인근에는 귀한 횟감으로 알려진 참가자미를 파는 횟집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그가 갓 잡은 싱싱한 가자미와 물곰은 횟집 수조 속으로 바로 직행해 손님을 기다린다. 


육지로 돌아오면 그는 곧바로 물고기를 무게별로 선별해 인근 횟집에 넘긴다. 그리고는 쉴 틈 없이 그물 정리 작업에 들어간다.(사진/프라이드i뉴스)

 

물고기들을 팔고 나면 그는 배로 돌아와 그물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우리 어부들은 불가사리가 제일 싫습니데이. 불가사리를 그물에서 떼낼라믄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이다보이 그렇심다. 그물 정리 하는데도 곱절로 시간이 걸린다 카이.” 

그물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 그물을 치고 부표를 띄운다. 육지로 돌아오면 비로소 그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보통 도시인들의 퇴근시간과 비슷하다. 그는 이후 저녁 겸 어부들과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낸다. 

“가끔은 밥보다도 막걸리가 훨씬 낫제.” 
배에 가득 실린 가자미 못지않게 같은 삶을 영위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막걸리 한 잔이 그의 하루를 더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그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감사하며 앞으로도 큰 바람은 없다고 했다. 

“우리 같은 어부들한테 무슨 큰 바람이 있겠능교? 그저 고기만 많이 잡히믄 더 바랄 게 없지. 나라에서 빌려준 돈으로 배를 사가꼬 먹고 살고 있는데, 고기가 많이 잡혀야 매달 갚아야 할 이자 걱정도 덜 수 있으니까…고기 안 잡힐까봐 그기 걱정이지요.” 

“그르이 먹고 살라믄 비가와도 눈이 와도 바다로 나가야지. 태풍이라도 와가 쉬어 뿌면 하루 밥벌이가 안 되는 건데…그거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거든. 몸도 마음도 안 편치요. 뭐 이자율 쪼매만 낮춰주믄 더 발랄 게 없고.”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지난 10년 전부터 가자미 어획량이 점점 줄어 큰 고민이라고 했다. 어민들을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도움이 고맙지만, 어획량 감소 등 피치 못할 어민들의 사정을 조금 더 배려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그의 하루는 그저 묵묵하고, 묵묵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이 보여주는 묵묵함은 고요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 무겁고 깊이 있고, 진지하게 다가온다. 유희나 휴식이 아니라 그의 말처럼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경상북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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